주민자치회, 왜 어떤 곳은 되고 어떤 곳은 안될까?
성공적인 주민자치회를 위한 핵심요소
주민자치회, 왜 어떤 곳은 되고 어떤 곳은 안 될까?
23년부터 25년 초까지 평택시 18개 동의 주민자치회 전환 컨설팅을 진행하면서 흥미로운 장면을 목격했다. 같은 프로그램, 같은 기간인데도 어떤 곳은 놀라운 성과를 내고, 어떤 곳은 제자리걸음을 했다. 특히 3주라는 짧은 시간 동안 두 마을이 보여준 극명한 차이는 나에게 깊은 질문을 던졌다.
같은 3주, 완전히 다른 풍경
"나는야 마을기자"라는 미션을 주었다. 마을의 문제를 발견하고, 주민을 인터뷰하고, 사진을 찍으며 현장을 조명해보는 활동이다. 분과별로 나누어 각자 책임을 가지고 결과물을 준비해 오도록 했다.
A마을의 반응은 처음엔 조심스러웠다. "실수하면 어떻게 하지?" "괜히 쓸데없는 짓 하는 거 아냐?" 하는 불안감이 보였다. 그런데 막상 구역과 역할을 나누고, 언제까지 어떤 방식으로 해보자고 정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검사 받으려는 게 아니라 우리 마을 일이니까 해보는 거잖아요." 서로 격려하기 시작했다.
3주 후, 발표 시간. 각 분과가 준비해 온 내용을 공유하자 회의실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아, 거기 항상 그게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원인이 있었군요!" 다른 분과의 발견에 공감하며, 해당 문제가 실제로 우선순위가 높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직접 발로 뛰며 조사한 내용들이 쌓이자, 위원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우리가 이런 것도 할 수 있구나." 이 사업은 결국 우수 사업 제안으로 선정되어 상까지 받았다. 주민총회에서 발표할 때, 그들의 목소리는 생생했고 설득력이 넘쳤다. 주민들도 "우리 동네를 이렇게 꼼꼼히 살펴봐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박수를 보냈다.
반면 B마을, 활주로 주변 지역이었다. 같은 미션을 제안했지만 아무도 참여하지 않았다. "우린 나이 들고 농사 짓는 사람들이라 그런 거 몰라요. 젊은 사람들이 해야지." 젊은 위원들은 젊은 위원들대로 어른들이 함께 나서주길 바랐지만, 서로 미루기만 했다. 매달 나오는 피해보상금도 누구는 길 하나 차이로 높게 받고 낮게 받는다며 불평했다. 정치인들은 선거 때만 와서 도와주겠다고 말만 하지, 누구도 진짜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는 냉소가 가득했다. "우리는 어떤 사업을 해도 행복하지 않아요. 우리 문제는 해결되지 않아요." 결국 3주 동안 아무런 결론도 내지 못했다.
첫 번째 조건: 셀프리더십 - "우리가 할 수 있다"는 희망
두 마을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첫 번째는 셀프리더십이었다. "우리 마을은 지금 보다 더 살기 좋은 곳이 될 수 있고 그 변화를 우리가 만들 수 있다"는 자신을 포함해 주민자치회의 존재에 희망을 품고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였다.
A마을 위원들도 처음엔 두려워했다. 실수할까 봐, 잘못될까 봐 조심스러워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래도 한번 해보자"는 의지가 있었다. 우리가 변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우리 손으로 마을을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부터 내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이 중요한지 역할을 인식하는 구성원들이 있었다. 이들은 "내가 기대하는 마을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가지고 있었고,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헌신했다.
반면 B마을은 오랜 시간 쌓인 실망과 배신감이 모든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었다. 보상금 차등에서 느낀 상대적 박탈감, 정치인들의 공약이 주는 배신감, 반복된 실망이 "학습된 무기력"을 만들어냈다. "어떤 사업을 해도 행복하지 않다"는 말 속에는 "우리는 할 수 없다", "이건 우리 일이 아니다", "어차피 안 될 거다"는 포기가 담겨 있었다. 셀프리더십이 무너진 곳에서는 학습도,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디서 내게 이익이 떨어지는 것이 없을까, 누가 밥 사는 사람 없나 하는 조건적 참여는 장기간 유지되기 어렵다. 조건이 사라지면 그것을 무시당했다고 느끼거나 무가치하다고 오해해 참여가 오히려 감소한다. 진짜 자치는 조건이 아닌 존재에서 시작된다는 소중한 가치를 기억해야 한다.
두 번째 조건: 학습 중심 - "제대로 배워서 해보자"는 태도
두 번째 차이는 학습하는 태도였다. 개인의 권리 주장이 아니라, "우리 마을이 정말 좋은 마을이 되기 위해 나의 작은 손길로 가능하다면 제대로 해야겠다"는 학습 중심의 자세였다.
몇 년간 "행정에서 안 해줬다"는 주장만 하거나, "어차피 공무원이 해야 할 일을 우리보고 하라는 거 아니냐"는 선입견을 가진 곳은 서로에게 상처만 주었다. 하지만 마을, 주민자치회, 사업 기획을 하나씩 학습해 가는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고, 마주한 문제가 무엇인지 그 본질에 대해 깊이 들어가려는 모습을 보인 곳은 달랐다.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고, 그 과정에서 마을의 새로운 자원과 가능성을 발견했다.
A마을 위원들의 "검사 받으려는 게 아니라 우리 마을 일"이라는 한 마디는 관점의 전환이었다. 누가 평가하려고 하는 활동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를 위해 배우는 과정이라는 인식. 이 태도가 현장 조사를 가능하게 했고, 주민 인터뷰를 통해 문제의 원인을 찾아가게 했으며, 서로의 발견을 공유하며 공감하게 만들었다. 학습이 사업으로 이어지고, 사업이 성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시작됐다.
학습 중심이 없는 곳에서는 회의 때마다 같은 불만이 반복됐다. 누군가를 탓하고, 조건을 따지고, 책임을 미루는 악순환만 계속됐다.
둘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셀프리더십과 학습의 선순환
여기서 중요한 발견이 있다. 셀프리더십과 학습 중심은 별개가 아니라 서로를 강화하는 관계라는 점이다.
A마을의 경우를 다시 보자. 처음 "그래도 한번 해보자"는 셀프리더십이 마을기자 활동이라는 학습을 가능하게 했다. 그런데 직접 발로 뛰며 마을을 조사하고, 주민을 인터뷰하고, 문제의 원인을 발견하는 학습의 과정 자체가 셀프리더십을 더욱 강화시켰다. "우리가 이런 것도 할 수 있구나"라는 경험이 쌓이면서 "우리가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 발전했다.
특히 다른 분과의 발표를 들으며 "아, 거기 항상 그게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원인이 있었군요"라고 공감하는 순간, 그들은 단순히 지식을 얻은 게 아니었다. 함께 배우며 서로의 발견을 존중하고, 그것을 통해 더 나은 사업을 기획할 수 있다는 집단적 셀프리더십을 경험한 것이다. 개인의 "나도 할 수 있다"가 "우리도 할 수 있다"로 확장되는 순간이었다.
반대로 B마을의 경우, 셀프리더십의 부재가 학습을 차단했고, 학습의 부재는 다시 셀프리더십을 더욱 무너뜨렸다. "우린 나이 들고 농사 짓는 사람들이라 그런 거 몰라요"라는 말은 학습을 거부하는 동시에, 자신들이 변화를 만들 능력이 없다는 무기력을 드러낸다. 학습하지 않으니 성과가 없고, 성과가 없으니 "역시 안 된다"는 냉소만 깊어진다. 악순환이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학습은 단순히 지식이나 기술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다. 학습 과정 자체가 "내가 성장할 수 있다", "우리가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경험을 제공한다. A마을 위원들이 마을기자 활동을 하며 "검사 받는 게 아니라 우리 마을 일"이라고 말할 수 있었던 건, 학습을 통해 자신들의 주체성을 회복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셀프리더십 없이는 진정한 학습이 일어나지 않는다. "어차피 안 될 거야"라는 태도로는 아무리 좋은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도 형식적 참여에 그치고 만다.
결국 성공하는 주민자치회는 이 둘의 선순환 구조를 만든 곳이다. 작은 희망(셀프리더십)이 학습을 가능하게 하고, 학습의 경험이 더 큰 희망을 만들고, 그 희망이 더 깊은 학습으로 이어지는 구조. 이것이 A마을이 3주 만에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낸 비밀이었다.
질문: 당신의 주민자치회는 어디에 있는가?
성공한 A마을도 처음부터 완벽했던 건 아니다. 그들도 두려워했고, 불안해했다. 하지만 "해보자"는 최소한의 의지가 있었고, 그 작은 차이가 3주를 완전히 다르게 만들었다.
주민자치회의 성공은 제도나 예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구성원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가, 그리고 "제대로 배워서 해보자"는 학습하는 태도가 있는가가 핵심이다. 그리고 이 둘이 서로를 강화하는 선순환을 만들고 있는가가 관건이다.
지금 당신의 주민자치회는 어떤가?
- 위원들에게 "우리가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가?
- "제대로 배워보자"는 학습의 태도로 문제에 접근하고 있는가?
- 작은 성공 경험이 더 큰 도전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있는가?
- 아니면 조건을 따지고, 누군가를 탓하며, 책임을 미루는 악순환에 갇혀 있지는 않은가?
다음 글에서는 이 선순환을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는지, 더 구체적으로 다루려 한다. 주민자치위원으로서 가져야 할 리더십의 실체, 그리고 마을기자 활동과 같은 마을변화프로젝트의 실전 접근법을 단계별로 나누어 볼 것이다. 우리 마을을 펄떡이는 주민자치회로 만드는 여정, 함께 시작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