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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없는 주민자치, 이벤트만 남은 마을

본질을 잃고 남은 껍데기에서 명분만 찾으니 나아가지 못하는 것 아니겠는가?

정구영
정구영 Nov 17, 2025

<이미지. Unsplsh>

서사 없는 주민자치, 이벤트만 남은 마을

박사 코스웍 시절,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와 1년간 재미있게 공부한 적이 있다. 그분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심리학에서 다양한 시도가 있어왔는데 지금은 하나로 종결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바로 뇌과학이었다. fMRI를 측정하고 뇌에서 반응하는 데이터는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뇌의 반응만으로 인간을 이해하고 해석의 기준으로 삼는 과학기술의 발전에 경이로움을 느끼지만, 한편으로는 인류가 쌓아온 삶의 궤적을 너무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환원하는 것 같은 씁쓸함은 여전히 남는다. 과연 뇌의 신호만으로 인간의 마음을 모두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런데 우리 사회도 비슷하지 않은가.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뉴스와 SNS 피드를 끊임없이 확인한다. 오늘 화제가 된 이슈는 내일이면 잊히고, 새로운 자극이 또 우리의 시선을 빼앗는다. 이렇게 순간순간을 소비하며 살다 보니, 정작 내 삶 전체를 관통하는 이야기는 사라진다. 더 문제는 이런 분절된 순간들을 끊임없이 공유하고 전시하는 것이 나를 증명하는 방식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내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보다,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는지가 더 중요해졌다. 한병철 교수는 이를 '서사의 위기'로 진단한다. 서사란 시간 속에서 축적되는 경험이고,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며, 공동체 안에서 의미를 만들어가는 이야기다. 그런데 우리는 이 서사를 잃어버렸다.

주민자치 역시 같은 맥락이다. 주민자치에 대한 담론이 수십 년간 제자리 걸음인 이유가 뭘까? 제도 정비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사업이 필요 없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공동체를 살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근본 원인은 주민들의 참여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고, 그 참여를 작동시킬 수 있는 핵심의 무언가를 다루지 않기 때문 아닐까 라는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요약하면 우리는 문제의 본질을 다루지 않고 있다.

마을에는 공모사업이 있다. 예산이 편성되고, 사업이 추진되며, 결과가 보고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마을만의 이야기, 주민들이 함께 써내려가는 서사는 어디에도 없다. 대신 어느 마을이 사업비를 더 많이 받았는지 비교하고, 특정 위원장이나 의원의 의견을 따를 것인지 말 것인지를 놓고 진영 싸움을 벌인다. 주민자치회 운영 자체가 예산을 집행하고 실적을 올리는 일반 행정 사업 중 하나로 평가절하된다. 이 모든 것이 서사 없는 이벤트, 보여주기에만 주목한 결과다.

나는 지난 22년간 300여 개 기업과 여러 지방자치단체를 거치며 주민자치 현장을 목격해왔다. P시의 주민자치회를 컨설팅하며 많은 회의에 참석했는데 모든 곳이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몇몇 곳은 시종일관 싸웠다. "우리 동은 왜 3천만 원밖에 못 받느냐", "옆 동은 5천만 원을 받았는데 불공평하다", “우리를 무시하는 거다”, “우리가 언제까지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하겠느냐”는 목소리가 회의실을 채웠다. 사업비가 많으면 성공한 주민자치회, 적으면 실패한 주민자치회라는 인식이 지배했다. 마을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주민들이 함께 고민하고 부딪히며 무엇을 배웠는지, 작은 성공과 실패를 통해 쌓인 경험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더 안타까웠던 것은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한 정치적 대결 구도였다. "○○ 위원장 말대로 하면 되지", "아니다, △△ 의원 의견을 따라야 한다"는 식의 진영논리가 주민자치회를 갈라놓았다. 주민자치는 주민 모두의 이야기여야 하는데, 누구 편에 서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주민자치회는 마을 공동체를 만드는 자치 기구가 아니라, 예산을 집행하는 또 하나의 행정 단위로 전락했다. 사업비 규모로 평가받고, 실적으로 줄 세워지며, 화려한 결과 보고서로 존재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일반 사업과 다를 바 없어진 것이다.

주민자치와 관련해 쏟아지는 기사를 보라. 전문가들이 나와서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주민자치 이름만 있지 실제 자치는 없다"고 비판한다. 그런데 그 비판의 내용은 수십 년째 똑같다. 제도의 한계를 지적하고, 행정과 주민자치의 조화를 이야기하며, 자치권 확대를 주장한다.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행정과 주민자치의 조화"라는 말은 옳고 그르고를 떠나 공허하게 들리기 까지 한다. 심지어 그 조화는 누구를 위한, 누구의 관점에서 말하는 조화인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원인은 제도에 있는가, 행정에 있는가, 주민에게 있는가. 이런 질문들은 또다시 책임 공방을 낳고, 그 공방전 속에서 주민들은 지쳐간다.

주민들은 자기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싶어 한다. 내가 만난 모든 주민자치위원들의 목소리는 한결같았다.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자원만 지원해주세요." 이 말을 해석하면 이렇다. "우리의 이야기가 흘러가도록 해주세요. 우리 마을만의 서사가 이어지도록 해주세요." 주민들은 복잡한 제도 해석을 원하는 게 아니다. 예산 규모 경쟁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자기 삶의 이야기에 자기 목소리를 담고 싶을 뿐이다. 그런데 왜 그들의 삶에는 제도와 규정만 채워지는가. 왜 마을 이야기는 사라지고 사업비 집행 내역만 남는가.

여기서 우리는 냉소적일 수밖에 없다. 주민자치는 서사를 잃어버렸다. 우리에게는 이벤트만 있을 뿐이다. 공모사업이라는 이벤트, 결과보고회라는 이벤트, 평가회라는 이벤트. 이 이벤트들은 빠르게 소비되고, 아무런 의미도 남기지 않으며, 다음 이벤트로 대체된다. 마을에 차곡차곡 쌓여가야 할 자치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지 못하고, 결과만을 인정받으려는 보여주기가 판을 친다. 그렇게 알맹이가 빠진 껍데기만 남은 주민자치에서 사람들은 즐거움도, 감동도 느끼지 못한다.

사람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움직인다. 돈만 있으면 마음을 살 수 있다는 자본주의식 발상에 빠져, 주민자치에도 예산만 충분하면 주민들이 움직일 것이라 착각한다. 하지만 기억해야 한다. 보상이 커지면 주객이 전도되는 법이다. 서사와 개개인의 변화 이야기가 없으면 혜택이 중단되었을 때 반발만 남는다. 우리 안에 있어야 할 보람과 아름다움, 성장과 추억, 꿈 같은 마을을 향한 기다림과 설렘, 간절함과 구슬땀 같은 것들이 아무 가치 없이 휘발되어버리는 먼지가 된다.

주민들이 원하는 서사를 만들어가려면 모종의 기술과 방법이 필요하다. 솔직히 내가 만나본 주민들 중 상당수는 그런 것이 필요한지조차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그저 "함께 모여서 이야기하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물론 모이는 것, 이야기 나누는 것이 시작이다. 하지만 서사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타인과 공감을 나누고, 함께 나아갈 방향을 만드는 일에는 기술이 필요하다. 그 기술이 무엇인지, 어떻게 익힐 수 있는지는 다음에 이야기하기로 하자.

지금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명확하다. 주민자치는 서사를 잃었다. 제도 논쟁에 갇혀 본질을 놓쳤고, 예산 경쟁에 몰두하느라 이야기를 버렸으며, 보여주기에 급급한 나머지 공동체를 해체했다.
한병철 교수는 서사 회복의 출발점으로 '경청'을 제안한다. 상대방의 말을 사려 깊게 들어줌으로써 스스로 이야기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그는 발터 벤야민과 한나 아렌트의 말을 빌려 이야기의 치유력을 강조한다. 환자의 병은 의사에게 증상을 이야기하는 데서 치유가 시작되며, 모든 슬픔은 이야기에 담을 수 있다면 견딜 수 있다는 것이다. 서사의 회복이란 남들이 하는 대로 공허하게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맥락으로 고유한 인생을 만들어가는 삶이다.
이제 질문해야 한다. 당신의 마을에는 어떤 이야기가 흐르고 있는가. 주민자치회가 만들어낸 서사는 무엇인가. 주민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는가. 만약 그 질문에 답할 수 없다면, 우리는 여전히 서사의 위기 속에 있는 것이다.

 
 

積小成大(적소성대) - 작은 것을 쌓아 큰 것을 이룬다.

서사란 거창한 성과나 화려한 결과가 아니다. 매일매일 주민들이 함께 나눈 작은 대화, 시행착오 끝에 얻은 조그만 깨달음, 서툴게나마 함께 만들어낸 변화의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 작은 이야기들이 모여 마을의 큰 서사가 된다. 사업비 규모나 화려한 실적보다 중요한 것은, 주민들이 함께 쌓아올린 시간의 무게다.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우리 마을의 이야기"를 말할 수 있게 된다. 주민자치의 회복은 제도 개선이 아니라, 이 작은 서사들을 소중히 여기고 차근차근 쌓아가는 데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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