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자치하우스

주민자치, 제도 설계를 넘어 실험의 문화로

온전한 주민자치를 위해 제도의 회복은 인간성의 회복을 넘어설 수 없다

정구영
정구영 Dec 2, 2025
 

주민자치, 제도 설계를 넘어 실험의 문화로

치열한 제도 논쟁과 냉담한 현장 사이

지방자치 30주년 학술대회는 주민자치 제도 재설계를 둘러싼 뜨거운 논쟁의 장이었다. 헌법 118조 개정, 고유권 vs 국가전래설, 통리 단위 주민총회제, 외부통제에서 내부통제로의 전환. 발제자와 토론자들이 제시한 문제의식은 날카로웠고, 대안은 정교했다. 그런데 현장의 목소리는 달랐다. "면 단위에 사람이 없다", "주민들은 소모된다고 느낀다", "학습이라고 하면 강사 불러야 하는데 강의비는 어디서 나오나".

제도 논쟁이 헌법과 법률, 권한과 예산을 다투는 동안, 정작 주민자치를 작동시켜야 할 사람들은 "배울 것도 없고, 할 사람도 없다"고 말한다. 이 간극은 어디서 오는가. 더 정확히 묻자면, 왜 제도 설계는 치밀해지는데 현장의 피로감은 깊어지는가.

핵심은 제도 논쟁이 '완성된 설계도'를 전제한다는 데 있다. 통리회를 만들면, 주민총회를 열면, 예산권을 주면, 그때 비로소 주민자치가 시작될 것이라는 가정. 그러나 현장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어설프게, 더디게, 때로 엉뚱한 방향으로. 문제는 그 움직임을 '아직 제대로 된 제도가 없어서 생긴 혼란'으로만 보는 시각이다. 제도가 먼저 완성되어야 실천이 가능하다는 발상은, 역설적으로 현장의 작은 시도들을 '미완의 것', '과도기적인 것'으로 평가절하한다.

듀이의 프래그머티즘, 민주주의는 삶의 방식이다

존 듀이는 민주주의를 제도가 아니라 '삶의 방식'으로 정의했다. 그에게 민주주의는 완성된 정치체제를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문제를 함께 발견하고 해결하는 과정 그 자체였다. 핵심은 경험-성찰-재구성의 순환이다. 어떤 문제에 부딪히고(경험),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따져보고(성찰), 다음번엔 다르게 해보는(재구성) 과정이 반복되면서 공동체는 스스로를 교육한다.

듀이의 실험주의는 '정답'보다 '질문'을 중시한다. 완벽한 제도 설계보다, 불완전한 시도 속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가 중요하다. 그는 학교를 "작은 사회"로 보았지만, 역으로 말하면 사회야말로 "거대한 학교"다. 주민자치는 주민들이 모여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마주한 한계는 무엇인가", "작지만 변화시켜보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결정할까"라는 질문에 답해보는 과정이다. 이 질문들은 강의실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함께 부딪히고 시도하면서 비로소 의미를 얻는다.

듀이가 강조한 또 하나의 개념은 '성장'이다. 그에게 교육의 목적은 완성된 인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계속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었다. 주민자치도 마찬가지다. 완벽한 자치 모델을 구현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공동체가 스스로 질문하고 시도하고 실패로부터 배우는 역량을 키워가는 것이 목표다. 그 과정에서 제도는 자연스럽게 진화한다.

제도 설계론이 놓친 것, 현장의 작은 성공 경험

학술대회에서 제시된 진단은 대부분 옳다. 외부통제형 관치 구조, 행정 예산에 종속된 주민자치회, 정당공천제로 왜곡된 지방정치. 그러나 이 진단들은 공통적으로 '결핍'의 언어로 말한다. 무엇이 없는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정작 무엇이 작동하고 있는지, 어디서 변화가 싹트고 있는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현장에는 이미 작은 실험들이 있다. 고령화된 마을에서 월 1회 반상회를 열어 독거노인 안부를 확인하는 통, 청년 귀농인 두 명이 주축이 되어 공동육아 품앗이를 시작한 리, 주민자치회가 폐교를 리모델링해 마을카페로 만든 동. 이 시도들은 학술대회에서 말하는 '내부통제형 주민자치'의 완성된 모델은 아니다. 예산도 적고, 참여자도 적고, 지속성도 불확실하다. 그러나 이들은 이미 듀이가 말한 '실험'을 하고 있다. 문제를 발견하고,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고, 안 되면 다시 방법을 찾는다.

문제는 이 실험들이 제도 논의에서 '아직 미완성'으로 취급된다는 점이다. 통리회가 법제화되지 않았으니, 주민총회 권한이 명시되지 않았으니, 재정자립도가 낮으니. 그러나 듀이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이야말로 '학습하는 공동체'의 모습이다. 완성된 제도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조건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시도하고, 그 경험에서 배운다.

학술대회 토론자들은 "학습하는 공동체"를 강조했지만, 정작 '학습'이 무엇인지는 충분히 다루지 않았다. 현장에서 학습은 여전히 "강사를 불러 강의를 듣는 것"으로 이해된다. 강의비는, 강의장은, 우리 마을은 시설이 나빠서. 이런 반응은 학습을 외부에서 주입되는 지식으로 보는 인지주의적 관점의 산물이다. 반면 듀이가 말한 학습은 경험의 재구성이다. 마을에서 겪은 일을 함께 돌아보고, 왜 그랬는지 따져보고, 다음엔 어떻게 할지 의논하는 과정 자체가 학습이다. 이 학습에는 강사도, 강의장도 필요 없다. 필요한 것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안전한 관계와, 시도를 격려하는 분위기다.

 

<이미지. Unsplash>

작은 질문부터, 작은 성공부터

단기적으로 필요한 것은 주민자치회나 통리회에서 던지는 질문의 재설계다. "올해 사업계획은 무엇인가", "예산 얼마를 어디 쓸 것인가"가 아니라, "우리 마을에서 가장 불편한 것 하나는 무엇인가", "우리가 직접 바꿀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일단 해보고 안 되면 어떻게 할까". 이런 질문은 거창한 사업계획서를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주민들이 실제로 마주한 문제를 끄집어내고,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게 만든다.

중요한 것은 '작은 성공 경험'이다. 듀이는 교육에서 성공 경험이 다음 도전의 동력이 된다고 보았다. 주민자치도 마찬가지다. 버스 정류장에 벤치 하나 놓는 것, 골목길 가로등 하나 설치하는 것, 이런 작은 성공이 쌓여야 "우리도 뭔가 할 수 있구나"라는 집단적 효능감이 생긴다. 제도 논쟁이 통리 단위 주민총회를 요구하는 동안, 현장은 "10명이 모여 할 수 있는 일 하나"부터 찾아야 한다.

이때 중간지원조직의 역할은 강사를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곁에서 질문을 함께 만들고, 시도를 격려하고, 실패를 성찰하는 과정을 지원하는 것이다. 학술대회에서 지적된 "지역민 기반 중간지원조직"의 필요성도 바로 이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외부 전문가가 정답을 가르치는 구조가 아니라, 주민들이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함께 걷는 동행자가 필요하다.

장기적으로는 제도 개선과 학습 문화가 함께 가야 한다. 통리 단위 주민총회제, 주민 직선 통리장, 읍면동 주민자치협의회로의 기능 전환, 이런 제도 논의는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이 제도들이 현장의 실험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지, 실험을 멈추고 제도 완성을 기다리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듀이식으로 말하면, 제도는 '경험의 도구'여야 한다. 주민들의 시도를 가능하게 하고, 실패를 보호하고, 성공을 확산시키는 도구로서의 제도.

 

<이미지. Unsplash>

주민자치는 완성이 아니라 과정이다

주민자치는 완성된 제도를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 그 자체다. 학술대회가 제시한 제도 설계안들은 그 과정을 지원하는 틀이 되어야지, 과정을 멈추고 기다리게 만드는 전제조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 듀이가 민주주의를 "완성이 아니라 과제"라고 했듯, 주민자치도 영원한 진행형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헌법 개정 논의와 통리회 현장 실험이 동시에 진행되는 것이다. 제도 논쟁은 계속하되, 현장의 작은 시도들을 '미완'이 아니라 '진행 중인 학습'으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고령화된 마을에서 두세 명이 모여 한 달에 한 번 반상회를 여는 것, 그것이 비록 법적 주민총회는 아니지만, 그 자체로 이미 자치의 씨앗이다. 그 씨앗을 보살피는 일과 제도의 토양을 개선하는 일, 둘 다 필요하다.

주민자치의 생명력은 법률 조항에서 나오지 않는다. 주민들이 모여 "우리가 원하는 삶"을 말하고, "우리 힘으로 해볼 만한 것"을 찾고, 시도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는 그 과정에서 나온다. 제도는 그 과정을 보호하고 확장하는 역할을 할 때 비로소 살아 있는 제도가 된다. 듀이의 말대로, 민주주의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매일 다시 만들어지는 것이다. 주민자치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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